나는 고향이 양양이다.
더 정확하게는 부모님이 강원도 양양의 어느 면의 무슨 리에 살고 계신다.
그냥 시골이다. 편의점도 없고 하루 버스도 4번 오가는...오지
명절이 되면 그 오지 강원도로 향한다.
백수라고 고향에 안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뭐 나는 약간 당당한 백수라 고개 들고 간다.
그래서 이번 연휴도 양양에서 보내고 집으로 막 돌아왔다.
갈 때는 가볍게 부모님이 보내주신 것들을 먹고 난
빈아이스박스와 김치통 반찬통에
선물을 조금 사고 과자와 음료 등을 준비해서 떠났는데
늘 그랬듯이 돌아올 때는 트렁크 가득
부모님의 정성을 싣고 다시 돌아왔다.
부모님은 농사일을 하신다.
부지런하신 부모님 덕에
어렸을 적부터 쌀부터 과일 야채까지
거의 모든 것을 직접 집에서 농사 지어먹었다.
심지어 어떤 때는 닭도 키웠었고 소도 있었다.
그렇기에 쌀을 사 먹어 본 것은 영국 유학시절이 전부이다.
아마 택비비가 쌌으면 쌀도 영국으로 택배 보내주셨을 것 같다.
그리고 김치도 한번 사 먹어 본 적 없다.
제철에 늘 과일을 보내주시고
또 늘 철마다 두릅, 고사리, 고구마, 감자 등도 보내주신다.
그냥 먹을 때는 잘 모르겠는데
직접 가서 땡볕에서 고생하며 농사 지으시는
것을 잠시 옆에서 돕다보면
그 수고스러움에 정말 감사하게 된다.
그래도 늘 가면 아주 작은 도움이지만
고추도 따고 밤도 줍고, 호두도 따고, 고구마도 캐고 했는데
이번 연휴에는 이틀이나 비가 와서 땅이 질어 아무것도 못했다.
강원도 날씨 정말 중간이 없다.
가는 날은 비가 오고 저녁에 춥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너무 더워서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비가 안 오니 오늘은 밤이랑 호두를 을 조금 줍고
배를 따서 포장했고 열무를 속아서 열무김치를 만들었다.
아삭아삭한 줄기가 김치맛을 기대하게 한다.
농사일이 상상하는 정도의 양이 아니다.
배나무 몇 그루, 밤나무 호두나무 한두 그루가 아니다.
배밭이 있고 밤나무 호두나무도 일일이 다 샐 수 없으며
고추, 배추, 무 밭도 생각하는 텃밭이 아니다.
들깨도 많이 심는데 그 면적도 적지 않다.
그러니 그 많은 작물을 부모님 두 분이서 해낸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농사일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인 것 같다.
최근에서 날씨까지 이상기온이라
농작물이 예전만큼 잘 자라지 못하는 환경이라고 한다.
날씨가 도와주면 참 재미있는데
뜨거운 태양, 모자란 강수량 등으로
죽어가는 작물을 보면 불쌍하다고 하신다.
오늘 열무를 속았는데
여름 내내 스프링 쿨러와 직접 호스로 물을 주면 살렸다고 한다.
정말 키우는 작물에 대한 애정과 끈기 노력, 고생 등
농작물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정말 엄청난 과정이 따른다.
정말 자식처럼 생각하고 키우는 것이다.
농작물 가격이 폭락하면 갈아엎는 농민들 마음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한다.
앞으로도 감사하며 먹어야겠다.
이것이 무슨 고기인 줄 아는가?
이 민물고기의 이름은 은어다.
https://namu.wiki/w/%EC%9D%80%EC%96%B4(%EC%96%B4%EB%A5%98)
초등학교 다녔을 때는
봄이 되면 파리낚시로 작은 은어를 잡아
수박향이 가득한 회로 먹었고
가을이 되면 고등어만 한 은어를 잡아
화롯불에 구워 먹던 기억이 있다.
정말 고급 어종이고 귀한 생선이다.
최근 10년 동안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추석상에 꽤나 씨알이 좋은
은어 구이가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손가락이 골절되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는 꼭 은어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밤에 강가에 나가셨다가 손가락이 부러지셨다고 한다.
영과의 상처... 그 상처로 잡아 올린 은어....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맛보는 귀한 식감과 향이다.
매 끼니마다 거의 2마리씩은 먹은 것 같다.
정작 본인은 드시지를 않는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뭐 이런 스토리는 아니다.
그랬다. 명절에 올 자식들 먹이려고 손가락 부러지며
그 은어를 잡으려고 몇 날 며칠을 한밤중의 강을
누비다가 손가락이 부러졌으리라....
맛있기는 하나 좀 죄송하기도 뭉클하기도 했다.
50살을 향해 가는데도
아직 그들에겐 밥 한 끼 잘 먹이고픈 아이일 뿐일 것이다.
감동은 잠시 은어의 여운은 오래 남는다 ㅎ
그 빗속에서도 아메바는 신이 났다.
사촌동생이 관중이 되어주고
오늘만은 마치 방구석 메시가 되어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며 연신 공을 찬다.
신발은 거지꼴이 되고
저 때까지만 해도 저 즐거운 놀이가 끝나면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기다리리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시골은 아이에게도 최고의 장소다.
살아있는 현장학습의 장이다.
과일도 야채도 직접 따보고
고구마도 감자도 직접 캐볼 수 있다.
아버지는 늘 손자, 손녀가 오면
뭐라도 하나 더 체험 시키고자 열심히 시다.
그래서 우리 아메바는 정말 양양을 좋아한다.
농업계 중학교가 있었으면 장학금 받고 다녔을 인재다.
그리고 늘 양양의 하이라이트
아궁이 숯불 바비큐
할아버지가 사시던 집을 그대로 보존 중인데
그 집에는 아궁이와 무쇠솥이 걸려 있다.
그래서 아궁이에 불을 때고 숯을 만들어 뭔가를 구워 먹는데
무엇을 구워도 그냥 맛있다.
이번에는 주목으로 장작과 숯을 만드셨다는데
숯향이 참나무 보다고 훨씬 좋다고 한다.
이번에도 여전히 자식들 먹이겠다고
민물장어를 미리 준비하셨다.
그리고 내가 장에 가서 두툼한 목살과 삼겹살을 사 왔다.
간이 잘된 고등어도 한 손 구울까 생각했는데
너무 양이 많을까 봐 이번에는 포기했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고등어 등
수없이 많은 종류의 구이를 해왔는데
뭐든 맛이 있었다.
고기는 늘 아버지가 구워 주신다.
자식들이 와도 자식들의 친구들이 와도
누가와도 늘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을 흘리며 굽고 계신다.
본인이 직접 구워야 맛있게 구울 수 있다고 하시지만
더운데 자식들 고생시키기 싫어서 그러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 돌아보면 아버지는 늘 그랬던 것 같다.
궂은일은 늘 자신이 했었다.
그런 것에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늘 보았었다.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참 한결같다.
우리 아빠가 맞다.
제사만 좀 그만 지내자고 선언하면
진짜 쿨하고 멋질 것 같은데...
역시 시람에게 전부는 안주나 보다. ㅋ
완벽할 수 없어서 사람이다.
그렇게 아궁이 앞에 둘러앉아
장어와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소주를 한잔하고
알딸딸해져서 낮잠을 잔다.
세상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막걸리도 한잔하고
소주도 한잔하고
먹거리는 넘쳐나고
살이 5kg은 찐 것 같다.
그렇게 명절을 마무리하고
당일인 오늘 저녁을 먹고 출발해 집으로 왔다.
이제 또 둘이 남게 되셨으니 적적 할 텐데
그래도 동생부부가 자주 찾아뵈니 그것이라도 다행이다.
집에 와보니.. 그래도 집이 제일이다.
늘 내 자리 내 것 나로서 살아가는 제일 편한 것이다.
내일 하루 쉬고 다시 일상이다.
이제는 슬슬 백수생활을 정리하려고 한다.
90일 , 3달을 쉴 계획이었는데
쉬는 것도 별로 재미가 없다.
또 치열하게 달릴 수 있는
에너지가 충전된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 가에서 아직 명절을 보내고 있을 그대들이 모두 행복하길 빈다.
그리고 하루 남은 연휴로 재충전되었으면 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빨간 날이 아직 하루 남았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알찬 연휴 마지막 날이 되길 기도해 본다.
모두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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